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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형태주의 심리학과 정신분석 심리학

by 냥냥s 2024.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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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형태주의 심리학

형태주의 심리학 또는 게슈탈트 심리학은 1910년에서 1912년 사이에 시작된 학문적 운동입니다. 이 시기에 독일의 심리학자 베르트하이머(Max Wertheimer)가 자신의 논문인 "운동지각에 관한 실험연구"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면서 등장했습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지각 현상을 개별적인 부분이 아닌 전체적인 형태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나타냅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의 창시에는 물리학자인 마흐(Ernst Mach), 철학자 에렌펠스, 그리고 칼 슈툼프(Carl Stumpf)가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 마흐 (Ernst Mach):
    • 오스트리아 태생의 물리학자 마흐는 특정한 형태나 구조는 더 작은 구성 요소로 나눌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2. 에렌펠스:
    • 에렌펠스는 "형태질"의 존재를 주장하여 특정한 경험의 질은 개별적인 감각 요소 이상임을 강조했습니다. 그의 실험적 연구는 주로 동물 지각 및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었고, 이를 통해 인간 및 동물의 행동 및 지능에 대한 이해를 촉진했습니다.
  3. 슈툼프 (Carl Stumpf):
    • 독일의 심리학자 슈툼프(Carl Stumpf)의 논쟁적인 주장 중 하나는 분트(Wilhelm Wundt)와의 논쟁에서 비롯된 것 중의 하나였습니다. 슈툼프는 분트가 실험실에서 진행한 연구에서는 음악적인 경험을 충분히 이해하고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게슈탈트 심리학이 전체적인 경험과 구조에 주목하며, 감각, 지각, 그리고 인식을 분석적이고 단편적인 방법이 아닌 전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에 영감을 준 것으로 간주합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이후에 슈툼프의 의견을 발전시키면서, 전체가 개별 부분보다 더 중요하다는 원칙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분트는 주로 실험적이고 분석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인식을 이해하려 했는데, 이에 반해 슈툼프는 음악적 체험이나 감정의 복잡성은 실험실에서 단순히 분해하거나 설명하기 어렵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분티아교체(Buntfarben)라고 불리는 현상을 통해 음악적인 경험이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후 게슈탈트 심리학은 이들의 영향 아래 성장하면서, 전체가 개별 부분보다 더 중요하다는 원칙을 강조하며 인식, 학습, 문제 해결 등 다양한 심리학적 주제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형태주의의 관점에서 뇌의 지각과 인식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베르트하이머(Max Wertheimer)는 가현운동(apparent motion)에 관심을 가지고, 이 현상에서 실제로는 없지만 느껴진 움직임을 '파이(phi)운동'이라 불렀습니다. 이 연구를 바탕으로 그는 "부분 과정 자체가 전체의 고유한 성질에 의해 결정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베르트하이머의 연구는 게슈탈트 심리학의 기초를 제공하며, 게슈탈트 심리학자로서 그의 연구에 참여한 코프카(Kurt Koffka)와 콜러(Wolfgang Köhler)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특히 코프카는 게슈탈트 심리학을 미국에 전파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고, 콜러는 게슈탈트 이론의 보급에 기여했습니다.

이들 심리학자들은 게슈탈트 현상이 어떻게 조직되는지에 대한 연구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연구를 통해 발견된 원리를 "게슈탈트 체제화 원리(Gestalt organizing principles)"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이 체제화 원리는 좋은 연속성, 유사성, 근접성 등과 같은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들은 전체가 개별 부분보다 중요하며, 어떻게 각 부분이 조직되는지에 대한 원리를 탐구하여 심리학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습니다.

 

레빈(Lewin)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독특한 심리학자로, 사회심리학의 창시자로 불리우는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영향력은 사회심리학 뿐만 아니라 발달심리학 등 다른 분야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레빈의 주요 이론 중 하나는 '장 이론(Field Theory)'입니다. 이 이론은 '생활공간(Life Space)'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하며, 이 이론에 따르면 행동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람과 환경 모두라고 설명됩니다. 그는 이를 수식으로 B=f(P,S)로 표현했습니다. 이 수식에서 B는 행동, P는 개인의 특성, S는 환경의 상황을 나타냅니다. 또한 레빈은 자신의 이론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위상기하학을 차용했습니다. 이는 그의 이론을 시각적으로 이해하고 전달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개별 사례 연구, 리더쉽 연구 등을 통해 레빈은 심리학 분야에 다양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사회심리학 분야에서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연구로 그의 업적이 인정받았습니다.

 

2) 정신분석 심리학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1890년대에 독립적인 심리학 분야를 창출하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과 의식, 자아와 초자아 등 독특한 개념을 도입하여 인간 행동을 설명했습니다. 특히, 리비도와 타나토스라는 성적 에너지와 죽음의 본능 개념을 도입하여 행동의 근본적인 기반을 이야기했습니다.

 

리비도와 타나토스는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리비도는 초기에 프로이트가 성적 에너지로 해석한 개념입니다. 리비도는 에로스의 형태로 여겨지며, 사람의 생명력과 성적 욕망을 나타냅니다. 프로이트는 리비도가 성적 에너지뿐만 아니라 창의성, 자아 신장, 사회적 상호작용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봤습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타나토스가 더 중요시되었습니다. 이는 죽음의 본능으로 해석되며, 생명력을 종결시키려는 욕망이나 죽음에 대한 힘을 나타냅니다. 프로이트는 타나토스가 인간 행동과 심리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았습니다. 프로이트의 리비도와 타나토스의 이론은 그 후의 정신분석 이론 발전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예를 들어, 카를 구스타프 융은 리비도를 중심으로 하는 분석심리학을 창시했고, 알프레드 아들러는 개인심리학을 통해 프로이트의 이론을 보완하고 확장했습니다. 이들의 작업은 정신분석학을 다양한 방향으로 전개시키면서, 프로이트의 영향력을 현대에까지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은 경험적 증거와 과학적 엄밀성이 부족 등의 이유로 심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특히 칼 포퍼에 의하여 유사과학으로 지적되면서 그 지위가 위협받았습니다. 포퍼의 주장은 정신분석학이 과학적 방법론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며, 이론체계가 반증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정신분석학은 혹독한 비판을 받게 되었고, 그 지위가 위협받았습니다. 하지만 현재에 이르러 칼 포퍼가 주장한 경험적 증거와 반증 가능성이 과학의 중요 속성이라는 주장이 속속들이 반박되고 오류를 지니고 있음이 드러나면서, 이런 지적은 많은 부분 수그러들게 되었습니다. 정신분석학이 과학적 지위에 대한 비판보다는 그 이론의 적용 부분 및 문제점, 그리고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반발감으로 인해 영향력이 줄어들어 현대 심리학에서 정신분석이 차지하는 위치는 크지 않습니다. 정신분석학자들은 미국 심리학회(APA)의 회원 중 10% 미만을 차지하며, 또 다른 중요한 단체인 APS의 회원 중 5% 미만을 차지합니다. 특히 실험심리학자들 중에서 정신분석학을 지지하는 학자는 전혀 없다고 할 정도로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 분야가 상대적으로 한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정 신분석학은 주로 임상심리학 분야에서 활동하며, 상담 및 심리치료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한, 정신분석의 개념들은 문화, 예술,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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